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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 나누기

no.944 가난,복음,성령
작성자 : 김은신 작성일 : 2013-01-12 조회수 : 2309

가난,복음, 성령

다시 2012년을 시작하였다.  

지난 나의 삶을 뒤돌아 본다.

예수...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고 싶어서 인생의 많은 여정을 걸었던 것 같다. 돌고, 돌아서...거부하고 또 거부하다가

요나처럼, 깊은 수렁에 빠져서야  하나님을 진정 만났고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흘리던 그 눈물로

한 달 내내 예배의 찬송과 기도 가운데 흐르는 눈물 콧물을 어찌할 줄 몰라

다시 들려지는 찬송 가사가 나에게 하는 말씀임을 깨달으면서

나는, 그렇게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2012년을 시작하였다.

예전에 맞보지 못한 성령에 이끌리는 삶이란 것을 체험하면서

한 발짝, 한 발짝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이리저리 모난 투성이의 나를 사랑하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인도로 온 곳이 이 지역아동센터였다. 그러고 보면 나의 과거는 하나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였던 길이었다. 그런데 난 이 자리에서 너무도 부족하다. 또 다른 세계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누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2012년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드리는 예배를 마치면서 주님이 주시는 참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교회의 식구들을 보고 나를 추스린다.

 

1986년 신학대학원M.Div 논문학기를 남겨놓고 미련도 없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노동현장으로 갔다. (그 때를 나는 인도주의적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우렸다고 정리하고 싶다.) 거기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시작될 것이고, 그들의 신음과 한 숨에 하나님은 응답할 것이고 나도 그 속에서 함께 하리라는 사명을 가지고 갔다. 물론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고 이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면서 아파했던 동료와 선배들이 있었기에 함께 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임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길임을 믿고 어떠한 어려움도 견디었다. 혼자가 아니기에 서로 위로하고 의지할 수 있었다. 든든하게 버티어 주고 동조해 주는 목회 현장에서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갈 수 있었다.

 거기서 해고되고, 또 해고되고 현장에서 일할 수 없을 땐 새벽에 신문도 돌리면서 유지했고,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안산에서 부산까지 갔었다. 내가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교회에서도 많은 빈민선교와  사회의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많은 소리들이 있었고, 신학교에서도 그 소리에 화답한 신학적인 논리들이  그에 응답을 하였다.  가난과 정의와 한민족의 한의 소리에 응답을 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통을 받들며, 이런 소리와 담을 쌓는 담높은 교회는 예수님 대신 오신 보혜사 성령님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성령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거룩한 분리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이 시대엔 있었다.  물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영혼을 사랑하라는 말로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난 영적인 체험이 없던 터라 이 세상의 불평등, 그것으로 인한 가난한 이웃,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고 아팠다. 그래서 나에게 들려지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가난한 이웃, 소외된 이웃에 대한 의미가 컸었다.  그에 응답을 한 것이다. 1992년 세상이 또 한 번 바뀌면서 나의 진로도 바뀌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그리고 거의 20년을 나는 하나님없이 이 세상에 파뭍혀 인간적인 노력으로 살아왔다. 한 가지 나의 열망은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희망과 행복한 공동체를 위해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하는데 나 나름대로 사명을 부여하고 뛰어왔다.  그 속에서는 내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게으름과 완전하지 못한 자신에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쟁사회 속에서 커다란 물리적 힘들과 싸우려고  주변 사람들과 많은 노력을 하여왔다. 하지만 이 사회의 커다란 벽, 자본주의와 그 제도를 지탱하는 제도 속에서 권력에 편승한 정보와 세력과 힘을 가지지 못한 약자들은 국민들을 배려하지 않은 정책의 시행으로 밀려나 버리고 그것이 나에게 가난으로 밀려왔다. 모든 것들을 빼앗겨야 하고 시간의 흐름은 돈 덩어리를 만들어 나와 가족들을 깊은 바다 속으로 빠뜨려버렸다.

 그 때 내게 다가온 빛은 하나님이 내게 비쳐준 빛이었고, 그 빛을 나는 따라 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성령이라는 기운을 받아 차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하겠노라고 길을 찾았다. 그 곳이 바로 이 교회와 지역아동센터 이었다. 이 곳이 1987년 세워졌으니 내가 노동현장에서 한창 노동조합을 만드느라 밤을 새며 씨름하던 그 시기였다. 예수님의 이웃 사랑에 대한 명령은 지독히도 예수를 믿고 그가 가르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살도록 가만 놔두지 않는가 보다.

 긴 27년 .

이 지역아동센터는 가난한 지역에 세워졌지만 세월이 흐르고 자본주의의 제도가 복지사회로 전환하여 가면서 공부방은 제도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빈민선교를 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고, 이제는 그 빈민선교도 지역아동복지라는 명분으로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 실무자들도 자격증을 딴 사회복지사들이 전문인이 되어 공부방에 근무를 하는 제도로 바뀌었다. 정부의 주도아래, 정부시책에 맞추어 가다보니 이제는 어떤 감상만을 가지고 되지 않는 듯하다.  이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없으면 공부방에서도 일을 하기 힘이 든다.  제도가 원하는 것,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지금 당장 꼭 해야 하는 것들을 사회복지사들은 잘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빈민선교라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말로 들린다.  지역아동센터의 공부방은 정부의 보조를 받으면서 그래서 안정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돌봄을 힘쓰고, 그들의 삶을 돕고, 가난한 가정에 한 가닥의 빛을 비추어 주는 터전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선교적인 차원은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는 부분이다. 이 숙제를 푸느라 신학과 사회복지를 같이 공부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기독교의 희년이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공동체는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말씀에 의거한 그 공동체가 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유는 교회가 함께 가난한 자들의 위해 십분의 1을 모았다가 그들의 자립을 위해서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지금의 사회복지적 나눔이란 자립을 위한 것들이 아니라고 본다. 어느 어머님의 말씀이다.

 “ 사실 쌀을 주고 하는 것은 어디에서든 못하겠냐?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매달 생활비로 쓰느라 빚만 늘어가고, 앞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할지 막막하다.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못하고, 정말 하루하루가 내일은 어떻게 될까? 하는 그 고민으로 살아간다.” 고 하셨다.

 현실에 이런 고민은 어느 누구나가 다 하는 고민이라면 교회 공동체의 일원은 그 고민을 감사로 돌려야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믿음의 공동체요, 교회의 나눔 공동체가 해야 되는 일이다.


 2012년 다시 찾은 감리교 신학대학교는 분위기가 영성을 강조하는 분위기, 감리교단에서의 목회과정에서 필수과목들이 추가되면서 학문과 목회현장이 좁혀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지역아동센터의 공부방에서 그 혹독한 일과 공부를 겸하느라 1학기엔 새벽까지 일하면서 열심으로 공부를 하였다. 학교에서 마련된 목회와 상담은 바로 내가 있는 현장에 많은 도움을 준 과목이었다.

그리고 나눔 공부방에서 진행되는 '대안학교'의 특별교육 학생들에 집중 관심을 가지면서 그들이 아파하고 고통받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근본구조는 가난한 가정, 가난 속에서 싹트는 위기의 가정이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는 어느 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제도와 정신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속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성령의 힘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이것은 구체적인 현장교회와 지역의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이러한 구조를 함께 가지고 있는 많은 센터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사역자를 배출하는 감리교 신학교와 영성을 강조하는 교수님들, 교회현장의 사역자들이 함께 한다면 이 사회의 터전 속에서 전 존재로서 하나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미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집으로의 초대를 감사하게 응할 것이라는 대안 책을 꿈꾸어 본다.

  요즘, 공부방에서의 밥을 먹는 저녁시간은 이런 생각을 가진 나에겐 귀한 저녁 시간이 되었다. 어제는 맛있는 뼈다귀 감자탕을 주방 선생님께서 끓여주셨다. 우거지를 넣고 뼈다귀를 푹 삶아 감자를 넣고 끓인 그 음식이 정말 맛이 있었다.  얼른, 나는 공부방에 오지 않는 아동들에게 전화를 하였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흐트러진 모습으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할 그 아이들이 떠오르니, 함께 저녁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태원이, 승준이, 윤호, 은석이, 민지, 영조, 영진이, 영주, 수빈이, 기인이, 주희, 민성이 수현이, 가영이, ... 그 중에 태원이는 반바지를 입고 다니다 감기가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감기는 잘 먹어야 나니 빨리 오라고 했다. 또 다른 아동, 공부방에서는 그동안 밥도 잘 않먹고 만들기만 열중하였던 *준이가 어제는 밥을 2그릇이나 먹었다. 그리고 오늘도 안 먹는다고 버팅기다 복지사 선생님께서

'밥을 잘 먹는 사람은 사탕 하나 줄거야!'

하는 말씀에 얼른 내가 말아 준 밥을 열심히 먹어치운다. *준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에 이렇게 애착이 가는 이유는 추석 때, 센터장님께서 모든 가정에 교회에서 후원으로 들어온 쌀을 준비하였다가 10키로 한 포씩 돌리셨다. 3명의 아동이 있는 가정엔 20키로 한 포. *준이는 그 쌀을 들고 갈 부모님들이 늦게 퇴근하시므로 공부방에 오신 봉사 선생님께서 배달을 가주셨다. 봉사자님께서 찍어 온 사진 속의 환경에 충격을 먹었다. 정리가 되지 않고 제자리에 놓여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환경 속에서 둘러 쌓여 있었다. 저녁 시간에 밥 먹는 것도 잊고 게임에 열중이었다.  그 사진을 본 후로는 밥을 먹지 않는 *준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밥을 먹이느라 씨름을 하고,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고, 그렇게 옥신각신 한 지 1달 정도 되었을까?  그런 후 *준이는 어제 2그릇을 먹은 것이다.  정말 기적이었다. 그리고 기뻤다.  이렇게 밥을 먹이려고 애를 쓰는 이유는 또 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한 달 일해서 벌은 급료는 아마도 외상값을 갚고, 집세내고, 세금내고 통신비내고 , 교통비로 제하면 월급을 받은 그 날로 통장은 0가 될 것이고, 갚지도 못한 외상값 때문에 또 한 달을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에게 한 끼의 식사는 보약이고,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 그대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삶의 희망을 잃고 버젓한 일자리가 없어 술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는 그들의 아빠. 늘 돈 때문에 가정 싸움이 그치지 않고, 심지어는 이혼의 위기까지 가는 그들의 가정에서 공부방에 오는 아동들에게 학교갔다. 책가방을 던지고 들어오는 그 아이들에게

 " **야 손씻고 밥 먹자 !"

  하는 그 소리는 한 가정에서 엄마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소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도 어린 시절엔, 가장 부러웠던 것은 부엌으로부터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예배시간에 **이와 **와 **이에게

“지금 하나님께 가장 기도하고 싶은 소원을 서로 이야기하자.  **부터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은 것 이야기 해 보자." 했더니

 "저희 엄마 아빠와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엄마를 정말로 싫어해요. 그래서 늘 싸워요."

"저희 아빠는 술을 않 먹었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술먹고 밥상 앞에서 엄마에게 반찬 없다고 뭐라 해요."

우린 서로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끼리만 이 비밀을 간직한 채 기도하기로 했다. 우리 모두의 심정은 같은 심정이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털어 놓은 시간이 처음이어서 쑥쓰러웠지만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어 정말 기뻤고, 마지막으로 서로 돌아가면서 기도해주었다.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지기로 했다.

이 곳에 오는 위기의 가정은 이 제도 속에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가정들이 많이 있다. 가난이 대물림이라고 하지만, 갑작스런 사업의 실패로 가난하게 된 가정들도 이 곳에 온다. 다양한 가정들을 이 곳에서 만났다. 그러나 입소 상담을 하다보면, 그 가난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징조들이 다 있었다.  그리고 바닥까지 가서 어찌할 줄 몰라 손을 놓은 가정들도 많이 있다. 여기저기 상담을 의뢰해보지만 가장 먼저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서부터 나오는 감정들을 처리 못해서 엉망이 된 가정. 그들에게 무엇을 제도가 해 줄 수 있는가?  설령 물질이 있다고 해도 미움과 시기와 질투 등 평화와 거리가 먼 이 감정들.  이 감정을 순화시킬 수 있는 것이 예수의 사랑이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 교회와 공부방에 나오는 아동들의 가정들에게 그렇게 전하고 싶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친다.  그리고 정부의 식사 지원금을 썼으니 요구하는 감사를 준비하느라 그것에 매달려야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역아동센터는 어떠한 종교도 강요를 할 수 없다. 종교의 자유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종교가 지닌 긍정적인 측면들을 정부가 인정을 한다면  강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특별교육을 지도하면서, 이 사회의 어떠한 제도도 그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것은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것을 학교도, 경찰도, 교육청도, 법무부도 모두 인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아이들의 아픔을 치료해 주지 못했다. 나는 그것의 해결은 ‘영성이다’는 결론을 갖는다.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만으로 채워져야 할 공간이 다른 물질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인간이 혼란스러운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러한 생각이 더하여 나눔 공부방에 오는 아동들은 그래도 사회적으로 빗나가지 않으니 대견하다. 사회적으로 돌봄의 망에 들어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허지만 그 망에 들어오지 못하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에 비하면 공부방에서는 작은 겨자씨들이 자라고 있다고 본다. 모든 아동들이 겨자씨로 자랄 수 있음 좋겠지만, 그래도 금요일 예배는 빠져 나가려고 애를 쓴다. 어떻게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또 이미 신앙이 있는 아동들은 집에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

어머니들과도 상담하다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에 한계에 다다를 때

"어머니 저희 예배가 있으니 거기 와서 같이 예배드리고 마음에 위로를 받고 같이 일들을 풀어가요."

라고 말씀을 드리면 모두 일하시느라 바쁘시다고 하신다.  언제 일이 끊어질 줄 모르니 일요일도 일거리가 있다고 하면 가야 한단다. 공부방에 나오는 어머님들은 미싱사들이 많이 계신다. 그리고 일요일 하루 쉬기 때문에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들 하신다. 전엔 그러한 상황을 이해를 했다. 그들의 처지에 예수님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래서 노동현장으로 갔었을지 모른다.

지금은 그 말을 들으면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비유가 떠오른다.

 가난하다고 모두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게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니라 ( 막14: 3~9) "


지금은 지역아동센터의 일을 그만 두었다.

이 일들을 이제는 작은 개척교회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와 지역아동센터는 근본적으로 출발부터가 다르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하는 자들이 오는 곳이지만 지역아동센터는 경제적 돌봄을 우선으로 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준비도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먼저 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복임이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밭도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먼저 열려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정리를 하고 그만 두었다. 이것이 내가 현실을 잘 모르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예수를 따르려고 헤매었던 것, 그 기간이 긴 27년이 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공동체를 위해서 나는 달려왔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시인할 수 있는 공동체다.

 그러다 보니 옛날 기억이 난다.

부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때, 경찰에 구속이 되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도망울 나왔고 갈 곳이 없어서 교회 기도실에서 잠을 잒다. 거기가 갈 곳도, 숨을곳도 없는 사람들에겐 정말 좋은 안식처였다. 어느 누구에게나 개방된 곳이다. 이렇게 기도실의 문을 열어 놓는 곳도 요즘은 드물다. 그리고 부산에서 제일 큰 노동조합의 간사로 2년을 있으면서 건강한 노동자들을 많이 보았다. 자신의 인간됨을 주장하고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지만 주도권을 가지려고 치열함 싸움을 하고, 하지만 정의를 앞세우는 불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는 싸움에 난 동의를 하고 같이 싸워왔다.

 그리고 1992년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 길로 나도 가족의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가족도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동생들도  시집 장가가고 아들 딸들 낳고, 조카들이 생기고...

 그리곤 모든 것들을 다 잊고 오빠의 일을 도왔고 그 후론 돈만 벌었다. 그리고 3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IM F로 어려운 시절, 어려움에 임한 어머니를 위해서 내 작은 아파느를 팔아드렸다. 그 때의 마음은 “ 네 부모를 공경하라.” 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난 집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공동체를 원한다.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은 시점이고, 정말로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하마님께 감사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밥을 먹고 사는 것도 감사했었다. 2012년 다시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들이 꿈만 같다. 저를 도와 주신 교수님들, 동문들, 목사님들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 낙찰이 되면 지금 살고 있는 집값보다 월씬 많은 금액을 대출을 받았으므로 우린 배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과거엔 내가 혼자이므로 어머니께 집을 팔아 드리면서 당당했고, 젊었으므로 걱정이 없었다. 일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 때문에 집이 넘어간다는 자책감도 많이 있다. 지키지 못한 것,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치신 것이라고 믿지만, 내가 했기에 망했다고 세상에서 일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길을 열어 주시리라고 믿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비밀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임을 믿는다.

 어머님께 집을 팔아 드린  후  나는 학원에 입문했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들이 좋아서 그들과 밤을 지새면서 14년을 보냈다. 거기서 결혼도 하고, 그리고 지금의 남편도 만났다. 남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아니 마음속으로 믿는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보다 훨씬 공평하시고 정의로운 하나님이시다. 단지 예배를 드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학원 사업이 번창하고 욕심을 가지고 1개 더 확장하면서 우린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었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갚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위기 때 하나님 없이 살다가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 그러고 보면 이모든 길들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의 눈으로는 내가 손을 대는 것마다 다 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 남편도 이제는 다시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가질 수 없고, 그것을 인정하였으니 하나님 살려달라고. 이 바닥 끝까지 온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을 하셔서 다시금 살 길이 열린다면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위한 살길이 될 것이고, 다시 주신 기회는 하나님만을 찬양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이 될 것이고 그것을 온 사람들이 인정할 것이라고 기도한다.

 그 기도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2012년 12월 26일 임의경매로 들어갔다. 배당 일자는 3월 23일이다. 그전에 경매가 시작될 것이다. 기도하는 바는 이 곳에서 집이 없는 사람들과 살면서 개척 목회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예비하신 길이라면 열릴 것이리라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거할 때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하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명에서 장난하며 젖 떼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 6:-9) "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저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 25- 2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 7- 13)

 그 성령이 가난한 우리에게도 임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평안과 이 땅에서의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계명인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그 날을 꿈꾸어 본다.

 


* 마지막으로 저희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어 잘곳이 없습니다.201년 3월 23일이 배당일입니다. 그러나받을배당도 없습니다.

돈도 마련되지 못하여 거주할 곳이 필요합니다. 꼭  기도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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